<수필56> 새벽 비

작성자慧松 김순희|작성시간26.06.20|조회수19 목록 댓글 0

<수필56> 새벽 비

 

                                                                                             혜송 김순희

 

 

  새벽에 눈을 떠보니 창밖은 캄캄한데, 주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환한 불빛이 밤새 누군가를 위하여 착한 밤샘을 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생명이 있든지 없든지를 떠나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한 헌신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벽에 버스 정류장을 이용한 사람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밤과 낮 두 개의 시간을 만든 것은 인간에게 정말 꿈같은 행복을 선물한 셈이다. 낮에는 삶을 위하여 바삐 뛰어다니다가도 밤에는 꿈을 꿀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사람들의 마음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다매일 똑같은 운행을 하는 우주 만물을 보면서 그들의 존재에 비유하여, 슬픔을 공유하고 아픔을 위로받으며, 먼 훗날을 꿈꾸는 것은 오롯이 내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저 깊은 어둠 때문이 아닌가!

 

  거기에 더하여 비가 내리는 새벽, 이제 나는 더 이상 바쁘지 않아도 된다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생각에 젖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다.

글 쓰는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확 밀려든다. 맑은 정신으로 심호흡을 하노라니, ‘티딕 틱!’ 조금은 둔탁한 빗방울이 창살에 떨어지는 소리....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밤새 그치질 않았나? 그래도 좋다.

먼 듯 가까운 듯 귀 기울이면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새벽에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에 복잡했던 온갖 걱정들이 사라지고,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걱정에 소화불량이 걸려 음식이 명치끝을 꽉 채우고, 어깨결림과 심한 두통에 눈을 뜨기 힘들었었다. 반백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날마다 오르내리는 당수치와 까다로워진 입맛과 수시로 변하는 정서에 예민하게 대처하려니 그동안 나도 많이 지친 것이다. 지금 환자인 남편은 잠들어 잠시 걱정을 덜어놓고 비의 장단에 걱정거리를 덜게 되다니, 새벽 비가 치유의 비가 되어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이 시간....그래서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서두에 쓰고 싶었다.

  어제는 밥맛이 없어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모진 말을 했었다.

작년 8월부터 밤낮으로 환자를 보살피다보니, 여기저기 아프다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데도 우선은 남편에게 두어야 한다.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 주고, 식사를 챙기고, 때론 정서적인 힘듦을 이겨내려 애쓰다 문득 남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혼자 속으로 삼킨다. 그런데, 이런 애씀에 대한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면서도 저 사람은 환자니까 그런 거야...그냥 다 넘겨야 한다.’ 그렇게 살아온 지가 열 달이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앞으로 더 심한 날들이 올 거라고...물론 나도 짐작은 하고 견디지만,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불안과 힘듦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런데, 얼뚱한 요구를 해서 부아를 돋울 때가 있다. 소화가 힘들어 식사를 못 하는데 자꾸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을 먹겠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설명해줘도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반박과 서운해하는 그의 말소리에 참았던 내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견딜 수가 없는데....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더 속이 상한 그 마무리....

어제 저녁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 못 들고 뒤척이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새벽 4... 검은 창밖에 새벽 비가 내리고 있었다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비는 나의 마음을 다 치유해 주었다. 어제 반박하며 쏟아냈던 그 많은 말들보다 아무 말 없이 검게 드리워진 장막과 조잘대는 빗소리는 훨씬 더 많은 치유를 해 주었다. 그냥 찾아와줬을 뿐인데....

 

  훤히 밝아오는 아침, 지금도 실비가 내린다.

난 창밖에서 아직 눈을 떼지 못하고 실비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 한다. 손을 내밀면 차가운 빗물이 내 손등을 훑고, 흐르는 전류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스민다. 이 비가 푸른 나뭇잎에도 내리고, 둥글둥글한 수국 꽃송이에도 내리고 마침내 땅속으로 스며 흐르겠지...!

나의 하루도 저 빗방울처럼 흘러가리라. 감정의 찌꺼기들까지 깨끗이 흘려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 나이 되어도 아직 미성숙한 인간의 한계, 오늘은 새벽 비가 나를 달래주었다. 행복한 하루, 그저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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