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장님, 제가 대교당 시일식 집행에 관해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집례자가 "심고하겠습니다." 라고 사용하는 용어 문제에 대하여 서울교구내에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지난번 임기때 교화부에서 집례자의 용어를 통일하기로 하면서 이렇게
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심고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해서 제가 집례를 볼
때는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구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구장님과 제 생각은 "심고드리겠습니다."로 하는 것이 옳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집례자들이 그동안 입에 붙은 습관과 나름대로의 교리해석이 바뀌지
않다보니 아직까지 "심고하겠습니다."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고는 내몸에 모신 한울님의 성령에게 고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고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심고의 대상이 한울님이라고 생각하여 존칭의 표현인 "심고드린다."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만일 "심고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는 심고의 대상이 없이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로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심고의 대상이
한울님과 스승님이라고 한다면 이는 불경스런 표현일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심고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하는 분들의 취지는 천도교가 기복신앙이 아니라 자율적
신앙이기 때문에 심고의 대상과 내가 성령상 하나이므로 심고의 대상을 별도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문제점은 한울님에게 대한
경외지심은 물론 한울님과 스승님에 대한 보은지심도 생기지 않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울님을 생각할 때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심의
깊이를 더할 수가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수도생활을 해 나갈 때 비로소 한울님과
스승님과 내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 인내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인내천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되면
천도교신앙의 참맛을 느끼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생각에 의한
신앙을 하는 것이지 느낌에 의한 신앙생활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느낌에 의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고드립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있는 문제가 아니고 각자의 느낌에 의해서 스스로 이해할 수밖에는 없는 문제
라고 생각합니다.
집례자가 "심고하겠습니다." 라고 사용하는 용어 문제에 대하여 서울교구내에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지난번 임기때 교화부에서 집례자의 용어를 통일하기로 하면서 이렇게
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심고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해서 제가 집례를 볼
때는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구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구장님과 제 생각은 "심고드리겠습니다."로 하는 것이 옳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집례자들이 그동안 입에 붙은 습관과 나름대로의 교리해석이 바뀌지
않다보니 아직까지 "심고하겠습니다."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고는 내몸에 모신 한울님의 성령에게 고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고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심고의 대상이 한울님이라고 생각하여 존칭의 표현인 "심고드린다."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만일 "심고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는 심고의 대상이 없이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로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심고의 대상이
한울님과 스승님이라고 한다면 이는 불경스런 표현일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심고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하는 분들의 취지는 천도교가 기복신앙이 아니라 자율적
신앙이기 때문에 심고의 대상과 내가 성령상 하나이므로 심고의 대상을 별도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문제점은 한울님에게 대한
경외지심은 물론 한울님과 스승님에 대한 보은지심도 생기지 않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울님을 생각할 때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심의
깊이를 더할 수가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수도생활을 해 나갈 때 비로소 한울님과
스승님과 내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는 인내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인내천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게되면
천도교신앙의 참맛을 느끼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생각에 의한
신앙을 하는 것이지 느낌에 의한 신앙생활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느낌에 의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고드립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있는 문제가 아니고 각자의 느낌에 의해서 스스로 이해할 수밖에는 없는 문제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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