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법암 전 용담수도원장님(신인간에서 펌)

작성자포덕|작성시간06.11.08|조회수56 목록 댓글 0

성·경·신(誠敬信)

김근오 법암·용담수도원장

   수운대신사께서는 <좌잠>(座箴)에서 “우리 도(道)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성경신(誠, 敬,信) 석자[三字]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해월신사께서는 “우리 도는 성·경·신 세 글자에 있나니라. 만일 큰 덕이 아니면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이요, 과연 성·경·신에 능하면 성인 되기가 손바닥 뒤집기 같으니라”고 하시고 “우리 수운 대선생님께서는 정성에 능하고, 공경에 능하고, 믿음에 능하신 큰 성인이시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신의 뜻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정성(精誠)입니다.
   수운대신사께서는 <팔절>에서 “정성이 이루어지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잃지 않았나 헤아리라. 이에 스스로 자기 게으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곧 정성이란 순일하고 참된 마음을 잃지 않고 변치 않는 것이며, 잠시라도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태만한 가운데서는 정성을 드리려야 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월신사께서는 “순일한 것을 정성이라 이르고, 쉬지 않는 것을 정성이라 이르나니, 이 순일하고 쉬지 않는 정성으로 천지와 더불어 법도를 같이 하고 운(運)을 같이 하면 가히 대성대인(大聖大人)이라고 이를 수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해월신사법설』 <강서(降書)>에는 “정성이란 마음의 주(主)요, 일의 체(體)가 되나니, 마음을 닦고 일을 행함에 정성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정성이란 모든 도덕의 주체가 되는 덕목으로 사람이 갖출 자세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였고, 또한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습니다.
   원래 도와 정성은 직결되는 것입니다. 예부터 “정성은 한울님의 도요〔誠者 天之道〕, 정성을 드리는 것은 사람의 도〔誠之者 人之道〕”라고 하였습니다. 해월신사께서는 이를 풀어 “사시의 차례가 있음에 만물이 생성하고, 밤과 낮이 바뀜에 일월이 분명하고, 예와 지금이 길고 멀음에 이치와 기운이 변하지 아니하니, 이는 천지의 지극한 정성이 쉬지 않는 도(道)”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성(盛)했다 쇠(衰)했다 하면서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며, 질서 있게 순환하는 과정에서, 봄에는 만물이 생동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결실을 맺고, 겨울에는 간직하면서 만물이 생성(生成), 발전하는 것과, 밤과 낮이 바뀌임에 해와 달이 분명하게 비치는 그 모든 이치와 기운이 먼 옛적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 한울님의 지극하신 정성이 쉬지 않는 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계절이 갈아들고 밤낮이 오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또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그 표면적이 약 오억 천만 ㎢에 달하는 거대한 물체인데, 그것이 허공에 뜬 채로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일분 일초도 어김없이 운행하고 있다는 점은, 과학에서는 인력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하지만,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러운 조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태양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 무량수의 천체가 조직적으로 운행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바로 한울님의 쉬지 않은 정성과 밝고 밝은 은덕의 자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한울님의 지극한 정성과 밝고 밝은 은덕을 잊지 않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입니다.
   해월신사께서는 “독실하게 공부해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 우물을 판 뒤에야 물을 마실 것이요, 밭을 간 뒤에야 밥을 먹을 것이니, 사람의 마음 공부 하는 것이 물 마시고 밥 먹는 일과 같지 아니한가? … 도에 대한 한결같은 생각을 주릴 때 밥 생각 하듯이, 추울 때 옷 생각 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 하듯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정성이 있고 믿음이 지극하면 돌을 굴리어 산에 올리기도 쉬우려니와 정성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돌을 굴리어 산에서 내리기도 어려우니 공부하는 것의 쉽고 어려움도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승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지극한 정성으로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을 받읍시다.
   둘째, 공경입니다.
   <강서>에 “공경이란 도의 주체요 몸으로 행하는 것이니, 도를 닦고 몸으로 행함에 오직 공경으로 종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도는 대인접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법설과 상통하는 말씀으로, 공경이란 수도행신(修道行身)의 유일한 덕목입니다.
   해월신사께서는 포덕 13년 1월 5일에 강원도 영월군 직곡리 박용걸 댁에서 ‘대인접물’을 말씀하실 때 “사람을 대하는 곳에 세상을 기화할 수 있고, 물건을 접하는 곳에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나니라. 만일 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도를 구한다면, 이는 허무에 가깝고 실지를 떠난 것이니 천만 번 법경을 외운들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으며, 천지 대자연과 교섭하지 않고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내지 만물의 본질과 본성을 아는 것은 그 도의 본체를 아는 것이요, ‘대인접물’의 묘법을 아는 것은 곧 도의 응용을 아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해월신사께서는 <성경신>에서 “사람마다 마음을 공경하면 기혈이 크게 화하고, 사람마다 사람을 공경하면 모든 사람이 와서 모이고, 사람마다 물건을 공경하면 만상(萬相)이 거동하여오니 거룩하다 공경하고 공경함이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사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공경하면 기혈이 크게 화한다’고 하셨는데, 이 때 마음은 곧 한울이니, 이 말은 한울님을 공경하면 심화기화 되어 어려서부터 있던 병이 물약자효(勿藥自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대신사께서 <권학가>에서 “성경(誠敬) 이자(二字) 지켜내어 한울님을 공경하면 자아시 있던 신병 물약자효 아닐런가”라고 하신 그 말씀입니다.
   또 ‘사람을 공경하면 모든 사람이 와서 모인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사람을 한울님처럼 공경하면 모든 사람이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 동귀일체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물건을 공경하면 만상(萬相)이 거동한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한울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는 것만으로는 도덕의 극치가 되지 못하고 물건을 공경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天地氣和)의 덕에 합일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울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경외지심(敬畏之心)이 발동되어야 합니다. 즉 한울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조심스럽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운대신사께서는 <팔절>에서 “두려움이 되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생각을 지극히 공평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게 하라”고 하시고 또 “죄 없는 곳에서 죄 있는 것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울님을 경외하는 마음, 즉 한울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더불어 조심스럽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믿음[信]입니다.
   대신사께서 <수덕문>에서 ‘대저 이 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 먼저 믿고 뒤에 정성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해월신사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억천만사가 도시 믿을 신(信) 한 자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성·경·신> 법설에서 “마음을 믿는 것은 곧 한울을 믿는 것이요, 한울을 믿는 것은 곧 마음을 믿는 것이니, 사람이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한 등신이요, 한 밥주머니일 뿐이니라. 사람이 혹 정성은 있으나 믿음이 없고, 믿음은 있으나 정성이 없으니 가히 탄식할 일이로다. 사람이 닦고 행할 것은 먼저 믿고 그 다음에 정성 드리는 것이니 만약 실지의 믿음이 없으면 헛된 정성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라. 마음으로 믿으면 정성 공경은 자연히 그 가운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한 믿음이 있은 후에야 지극한 정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지극한 정성이 있은 후에야 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암성사께서도 포덕 51년 6월 1일 수강생들에게 “그대들은 믿을 신(信)자를 특별히 생각하라.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이 오직 믿고 믿지 않는 데 있나니라. 만약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하루에 몇만 독을 주문을 외워도 소용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의암성사께서는 <이신환성설>에서 “대신사님의 법력은 원원충충(圓圓充充)하여 길이 살아 계시어 없어지지 아니하나니, 물 가운데 그냥 가시는 것과 비 속에서도 옷이 젖지 않는 것은 대신사님의 생전법력(生前法力)이요, 한여름에 청수(淸水)에 얼음이 얼고, 성미(誠米) 그릇에 성미가 불어나는 것은 대신사의 사후법력(死後法力)이니 대신사의 법력은 생전 사후가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스승님께서는 성령(性靈)으로 감응하시고 간섭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스승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 공경하고 한 소쿠리가 모자라는 한이 없도록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여 도에 이르도록 합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