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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숨은 얼굴

작성자봄나비|작성시간26.06.15|조회수12 목록 댓글 0

숨은 얼굴

고영민


무늬목 장롱 하나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채
문밖 버려져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방 한 켠 차지했을
이처럼 큰 방에 놓이기는 처음이라는 듯
붉은 칸나꽃 옆 우두커니
가을볕을 쬐고 있다

문을 열어본다
단칸방 속의 단칸방
한때 우리가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저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텅 비어 있다
포개진 이불도 비닐에 싸인 옷도
삼베 원단과 청약통장
늦도록 찾아 나섰던 아이
조마조마한 마음
까무룩한 잠도, 어둠도 없다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뿐

문 안쪽 작은 거울이 붙어 있다
얼굴을 가져가본다
숨은 얼굴 하나가
힐끗
나를 본다


*계간 《유심》(202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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