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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김남주] 이 가을에 나는

작성자카라|작성시간00.04.10|조회수216 목록 댓글 0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 내려
염소에서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께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논둑길 밭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에 돈다
저 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피어오
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詩.김남주


김남주 서정시집 "옛 마을을 지나며".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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