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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물오리 [김광규]

작성자초록여신|작성시간04.03.09|조회수15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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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이 아니면서도
가장 곧게 자라는 나무
전기를 일으키지 않는
그 위안의 나뭇가지에
결코 앉지 않는
거룩한 새
오리는 눕거나 일어서지 않는다
겨울 강 물 위를 부드럽게 떠돌며
단순한 몸짓 되풀이할 뿐
복잡한 아무 관습도 익히지 않는다
눈덮인 얼음 속에 가끔
물의 발자국 남기고
지진이 나면 돌개바람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며
죽음의 땅 위에 화석이 될
마지막 그림자 던지는
완벽한 새
오리가 날아 왔다가
되돌아가는 곳
그곳으로부터 나는 너무 멀어졌다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나는 아무래도 너무 멀리 와
이제는 아득한 지평을 넘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무심하게 날개치며 돌아가는
오리는 얼마나 행복하랴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애써 배운 모든 언어를
괴롭게 신음하며 잊어야 한다
얻을 때 보다 훨씬 힘들게
모든 지식을 하나씩 잃어야 한다
일어서도 또 일어서고 싶고
누워도 또 눕고 싶은
안타까운 몸부림도 헛되이
마침내는 혼자서 떠나야 할 것이다
날다가 죽어 털썩 떨어지는
오리는 얼마나 부러운 삶이랴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
그 먼 곳을 유유히 넘나드는
축복받은 새
나는 때때로 오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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