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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추천]머금다 / 천양희

작성자타클라마칸|작성시간04.06.22|조회수1,295 목록 댓글 1



머금다 / 천양희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지겠다
청미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사랑을 머금은 자
이 봄, 몸이 마르겠다

ㅡ<<파라Para 21>>(200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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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금다 [―따][타동사] : (1)입속에 넣어 삼키지 않은 채로 있다. // 물 한 모금을 머금었다가 훅 내뿜는다. (2) (생각 따위를) 품다. // 앙심을 머금다 . (3) 나무나 풀 따위가 물 같은 것을 받아 지니다. // 이슬을 머금은 꽃잎. (4) 눈물을 글썽이기만 하고 흘리지 아니하다. // 눈물을 머금은 눈. (5) (어떤 감정을) 조금 나타내다. // 수줍음을 머금은 앳된 모습.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다. ( <동아새국어사전>에서 인용)

이 짧은 시가 성공한 데는 두어 가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시는 '머금다'는 동사의 다의성에 빚지고, 이 동사가 머금고 있는 '아름다운 예감'과 그 예감이 빚어내는 '아득함'에 기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모두 시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낱말 중에는 시어로 적당한 것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가령 고풍스런 찻집 이름 중에 '길다방'은 있어도 '도로다방'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길'과 '도로'가 거느리는 의미의 두께와 질감의 차이 때문이지요. 이런 탓에 중심이 되는 낱말의 선택이 시의 성패를 좌우할 때가 많습니다. 시인이 낱말 하나를 찾아 밤을 꼬박 새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소재로 동원된 명사들이 담지하고 있는 짙은 서정성입니다. 명사는 단순한 '이름씨'가 아닙니다. 어떤 명사는 그 스스로 자신을 밝히기도 하고 호명하는 주체가 되어 말 걸어오기도 합니다. 거위눈별, 충동벌새, 그늘나무, 구름비나무, 청미덩굴 등은 발음할 때 드러나는 음률성과 더불어 글썽이고, 설레고, 아프고, 촉촉하고, 청순한 어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랑'의 속성과 이어지면서 주제를 위해 기꺼이 복무하고 있습니다. 즉, 이 생소한 명사들이 진부한 주제인 '사랑'을 떠받침으로써 낡은 주제를 새롭게 부각시켜 독자들의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머금은 것들의 예감이 주는 시적 효과입니다. 드러난 것의 핍진한 묘사로 인해 시적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가 내장하고 있는 예감이 긴장감을 획득하며 훌륭하게 시를 살려내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는 그 예감들이 어떤 목적을 향해 의도를 가지고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기/꿀/그늘/비구름/서리는 각각 비/꽃가루/어둠/장마/붉은 열매를 예감하며 그리움/달콤함/쓸쓸함/아득함/완성이라는 '사랑'의 일반적 순서와 절차를 충실히 반영하여 미괄식의 결론을 위해 응집됩니다. 시인의 시인됨은 어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일생을 두고 치열하게 언어와 싸워온 시인만이 자신의 언어를 통해 스스로 시인됨을 증명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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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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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비가된여자 | 작성시간 04.06.22 타클라마칸님의 시는 프린트해서 보는 편인데요.오늘도 프린트 된 시를 보고 생각합니다.앗..이런 내공은 어디서 오는걸까? 하구요..^^ 꿀맛입니다.. 시와 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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