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사랑

빨래는 엄숙하다 [채필녀]

작성자초록여신|작성시간04.07.28|조회수93 목록 댓글 0
*~*~* 빨래는 엄숙하다 *~*~*












택일하듯
햇빛 좋은 날을 잡아
팔을 걷어 부치고
장화를 신고
빨래거리를 한 아름 안으면
제법 비장해진다
힘이 솟는다

웅크린 수캐 같은 겉옷
젖을수록 뻣뻣해지는, 목발 같은 청바지
흐르는 속옷
월화수목 행선지가 다른 양말

빨래판은 완벽한 자세로 엎드렸다
비누는 흥얼흥얼 풀어지자고 재촉이다
빨래통엔 숨죽인 옷들이 가득,
단지 때를 뺀다는 편견을 나는 버렸다

옷감의 씨줄과 날줄 사이
매달리고 달라붙어 있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 했던 것들
이를테면, 거친 먼지를 뒤집어쓴
지친 관념들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들
이를테면 땀에 젖어 축축한 욕망들을
분리하고 헹구어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저기 햇살과 바람에 빛나고 있는
분해된 몸뚱이를 보아라









* 나는 다른 種을 잉태했다 / 채필녀 시집 / 천년의 시작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