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과 설령
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쓰여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
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
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
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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