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이민하
붉은 빙산을 떠받치고
마른 성냥을 그어대는 두 개의 분화구
오른쪽엔 바다로 가는 계단, 왼쪽엔 용암에 타는 나무
찢어질 듯 양 날개로 헤엄치는
목 잘린 나비 한 마리
<환상수족>
숲속의 키스
김행숙
두 개의 목이
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
창문이 열리고
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
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
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
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
키스는 가볍고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이별의 능력>
나비 키스
장옥관
물이 빚어낸 꽃이 나비라면
저 입술, 날개 달고 얼굴에서 날아오른다
눈꺼풀이 닫히고 열리듯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접혔다 펼쳤다 낮밤이 피고 지는데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나
아, 어, 오, 우 둥글게 빚는 공기의 파동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
배추흰나비 분가루 같은
네 입김, 어디에 머물렀던가?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각도
김록
속눈썹은 무언의 각을 이루고 있다
눈은 코의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진다
두 개의 동공은 코끝을 매만진다
마주 보고 있는 섬 사이에
예각적 조응이 이루어진다
교차점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오면
평원이 펼쳐진다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있다
짧은 입맞춤이 있었다
<광기의 다이아몬드>
그대와의 입맞춤
이선영
그대와 내가 입맞추는 입 안에 물고기 길이 생겼어 그대
와 나의 입 안에서 사랑에 빠진 두 물고기가 놀고 있는 것
같아 숫물고기가 된 당신의 혀와 암물고기가 된 나의 혀가
<차마, 소중한 사람아>
입맞춤
이영옥
그대와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한다면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수
천 개의 바람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빛나는 계절 뒤에 떼로
몰려오는 너의 허전한 바람을 마중해주는 일이며 빈 가지에 단
한 잎 남아 바르르 떠는 내 마른 울음에 그대가 귀를 대보는 일
이다 서로의 늑골 사이에서 적막하게 웅성거리고 있던 외로움
을 꼼꼼하게 만져주는 일이며 서로의 텅 빈 마음처럼 외골수로
남아 있던 뭉근한 붉은 살점 한 덩이를 기꺼이 내밀어 보는 일이
고 혀 밑에 감춰둔 다른 서러움을 기꺼이 맛보는 일이다 맑은 눈
물이 스민 내가 발뒤꿈치를 들고 오래 흔들리고 있었던 그대 뜨
거운 삶의 중심부를 가만히 들어 올려주는 일이다
<사라진 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