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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 성미정

작성자도화지|작성시간09.10.23|조회수125 목록 댓글 4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 성미정

 

 

 


남편은 내가 끌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궁금해서 결혼했고
나는 남편이 내가 지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을
받아주는구나 착각해서 결혼했고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좀 더
커다란 가방만을 원했고
남편은 내가 온갖 잡동사니 쑤셔 넣고 다닐까
더 커다란 가방을 못 사게 하고
툭하면 좀 더 커다란 가방 때문에 다투면서도
나는 남편에게 더 커다란 가방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남편은 내가 자기랑 헤어지고 더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닐 꼴을 못 봐서 헤어지지 못하고
오나가나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만난 우리는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그런데 이 시를 읽고 계시는 극소수의 독자 여러분
(크지 않은 가방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부부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커다란 가방 때문일까요

 

 

 

* 톡톡 튀는 언어 속에 가볍지만은 않은 성찰을 담아내는 게 성미정 시인의 특장인데요. 이 시에서도 시인은 사랑의 역학을 재미있고 능청스럽게 풀어냅니다. ‘그놈의 커다란 가방’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오해와 집착 때문에 이 부부는 아웅다웅 싸우면서도 함께 살아가지요. 어떤 부부나 연인이든 ‘그놈의 커다란 가방’ 같은 핑계거리를 하나씩은 갖고 있지 않을까요? 사랑이란 때로 서로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빚어낸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걸 다 퍼내도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지요. 그게 무언지 말하기 쑥스러워서 시치미떼고 있을 뿐.(나희덕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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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다래투 | 작성시간 09.10.24 특장이라는 말이 뭔 뜻인지? " 사랑이란 때로 서로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빚어낸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걸 다 퍼내도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지요. " 그 앙금 때문에도 또 하나의 핑계. 핑계 아직 피지 못한 사랑의 꽃봉오리. 좋은 詩 감사합니다. 가을사랑 다래올림.
  • 답댓글 작성자jwkim | 작성시간 09.10.24 특별한 장점이 아닐까요 ㅎㅎ 괜찮은 시 같아요 ㅎㅎ 이래도 ㅎ 저래도 ㅎ !
  • 작성자꽃지는저녁 | 작성시간 09.10.26 가방 때문에 살겠어요. 정과 사회적인 룰과 아무에게도 말한 적도 없고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무엇인가가 있을꺼예요. 그게 가방이든 무엇이든간에...
  • 작성자초록여신 | 작성시간 09.10.29 핑계임에 틀림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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