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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이외수

작성자실꾸리|작성시간09.12.06|조회수203 목록 댓글 3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해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은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이외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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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꽃지는저녁 | 작성시간 09.12.06 근심에 대해선 근심하지 않는데 당면한 근심은 참 난감하죠.
  • 작성자다래투 | 작성시간 09.12.06 2연 2행에 최신실~은 최신식이 아닌지요. 태클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실꾸님의 수고 하심에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늘 평안 하세요. 다래올림.
  • 작성자실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07 저번에 빨간펜 그어져 조심했는데 또 걸렸네요. 아이긍 날카로운 눈빛에 오금이 저려요.
    다음에 잘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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