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네 얼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정신 차려 보니 문득 귀에 익은 음악 한 소절을
반복해서 읊조리고 있는 거야
너를 만나고 싶지만
그것은 정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으로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다시 한 번 네 앞에서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 이전의 일은 떠오르지 않네
너를 포옹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어
단지 네가 없는 세계가 정말 따분해서
나는 고속 촬영하는 영화 속 배우처럼
천천히 담배에 불붙이는 거야
그러면 너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쾌락처럼도 생각돼
너는 어쩌면 언젠가 내가 타국에서 본
아득한 옛날 아름다운 조각상의 하나일지도 몰라
그 옆에서 분수는 높이 솟아 햇살에 빛나고 있네
[이십억 광년의 고독],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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