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스무살의 젊은 나이였을 때
나는 문학과 연극에 몰두해 있으면서도
늘 또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더없이 낯설었고, 권태와 무의 심연에 깔린 살얼음 위를
나와 내 동년배들은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저녁의 어두운 거리를 지나면 나무들과 건물들 위에서 하늘이 소용돌이 치고,
그 너머에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공허를 우리는 보곤 했다.
한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행복은 담장 너머로 나직하고 쓸쓸하게 장미꽃을 적시면서 가을비처럼 덧없는 것이었다.
검은 새.
어떤 검은 새의 날개가 늘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따라다니는 듯 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갈 가능성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 . .
사람들은 때로 충격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에 태어났고,
또 그 세계가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 . .
우리가 사회와 타협하지 못할 때,
혹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사회와 공범이 되기를 거부했을 때
우리가 홀로 설 만큼
찬란한 정신을 갖고 있기 전에는
우리는 즉물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성향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아직 세상을 살아보기도 전에
우리에게 찬란한 정신을 갖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우리는 잘나빠진 이 사회의 종교나 도덕이나 정치가 젊은 세대들에게
아무런 것도 주지 못하고 있음을 먼저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 . .
그러할 때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정신과 육체의 향락,
아니면 절망적 세계관,
반역과 늘 솟구쳐 오르는 구토증,
그것 뿐이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이나 인도의 심원한 정신의 세계는
결코 우리와는 먼 세계다.
따라서 그 세계들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우리를 더욱 패배자로 만들뿐이다.
그러나 때로,
몸의 열기가 식어 가고
갑자기 머리 속이 텅비어 버릴 때면
우리는 문득 어떤 세계가 그리워 진다.
그것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세계다.
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세계를 우리 자신이 비추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말대로
젊은 날의 우리는 젊은 날에 바라서는 안될 것들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남모르는 꿈을 갖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병과 고독과 가난에 지쳐 쓰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 남모르는 꿈에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역자(안재찬)의 말중에서
남들은 아직 좋은 때,
젊은 날이라더군요.
좋은 때... 젊은 날인가요?
다들 어떠신지...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마음도 춥네요...
위로 좀 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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