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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텔 팔라조 베르사체 / 기혁

작성자김명서|작성시간10.12.27|조회수166 목록 댓글 0

호텔 팔라조 베르사체

 

기혁

 

 

캥거루는 원주민 말로 ‘나는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의 이름을 지어내기 전에

너와 나의 나무가

하나의 연두색으로 까다로워지기 전에

 

풀잎을 쓰다듬으면

멀리 아프리카사자들이 갈기를 세우고 정원 구석구석

긴 송곳니들이 자라나던 시절에

 

우리는 지구의 신념처럼 모르는 걸 반복했다죠

 

호텔 팔라조 베르사체의 모든 물품은 베르사체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를 모르는 베르사체

 

간밤에 욕실에서 물이 샜어요.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테니

벨보이! 여기 베르사체 좀 옮겨다줘요

 

캥거루가 ‘통통통’ 소리를 내주면 좋으련만

우리는 작별 인사도 없이 다가서고

2달러 팀을 받은 햇살은

기둥마다 붙어있는 사자를 이끌고 와요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빨자국이 생겼다는,

어느 투숙객의 우스갯소리가

품에 안은 코알라를 더 선명하게 분리하는 여정

 

우리는 기념촬영이 끝난 이방인처럼

유칼립투스 이파리를 입에 물고

각자의 호주머니를 뒤져요

 

남몰래 사막을 달리던 캥거루도

구멍 난 주머니를 발견하게 되면,

 

흘러내린 것들과 함께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할 수 있을까요?

 

호텔 팔라조 베르사체의 로비가 붐벼요

세계지도 위에 또 발자국이 찍혔어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구도 혼자서 방을 찾을 순 없데요

 

 

*오스트레일리아 골든 코스트 해변에 위치한 호텔

 

 

<열린시학 2010년 겨울호 > 1979년 진주 출생 2010년 시인세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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