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궁전
강유환
자귀꽃 핀 비닐하우스촌 옆을 지난다
저물녘 햇빛에 반사되어 환한 비닐 지붕이
물비늘 파들거리는 서녘 바다 같다
이파리 가득 난바다의 파랑을 가늠하는
미루나무 몇 그루가 등대처럼 서 있다
저 잔잔한 비닐 동네로 미끄러지듯 들어서면
시름도 꽃으로 피고 아픔도 모자람도 없는
수국의 어떤 나락 숨어 있어야할 것 같다
뒷날 도래할 영웅이 봐둔 미답의 천도지에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비장의 구중궁궐도 있어
도시 끝 저 아득한 궁전에 입궁하는 이들은
누항을 버리고 난세를 피한 비밀 백성일 것
비닐 궁전 앞 자귀꽃불 깜박깜박 켜놓고
한길 너머까지 궁궐 문 활짝 열어두어도
서둘러 궐 밖으로 비껴가버리는 침침한 눈들
밤이 깊으면 저 나라의 백성은 흔적도 없이
거룻배 한 척에 아름다운 수궁을 싣고 둥둥
혹세의 무리를 떠나 서천바다로 깜박 넘어갈 것이다
*시집 『꽃, 흰빛 입들』 출간을 감축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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