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다
잘 안 오던 잠이 자꾸만 쏟아져
바닥에 책상에
의자에 나는 엎질러져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가 모르는 그곳으로
가다가 가지 말아야지 하다가
나도 모르게 터진 포대 자루의 쌀알처럼 슬슬
빠져나가 어디서부턴지 언제부턴지 모르게
꽃잎이 날리고
잎이 푸르러져
봄밤인가 싶으면 여름밤이 내 앞을 서성거리고
시를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세월 참 빠르다
어제 만난 사람들끼리 늦도록 얘기하다
막대사탕 같은 머리를 떨구고
단잠에 빠진 사람에게
잘 가라, 깨우며 인사를 하고
가자, 가자, 새벽 네 시가 다 되어
일어설 때 쓸쓸해지자마자
쏟아지는 빗방울
빗방울
소리가 다정하게
잠을 불러와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한번 쏟아진 것은 쉼이 없다
시고 뭐고
나는 불행하다가
행복하다
이렇게 보내는 요즘 내 사정을
시시해하는 엄마에게
괜찮아 괜찮아
말하다가 알았다
처음으로 나를 서러워했다
밤이 되었다가
아침이 되듯이
사나운 꿈이었다는 듯이
이번의 내가 나도 모르게 지나가겠지
참 빠르게 사라지겠지
쏟아지는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이기지 못하고
[양들의 사회학], 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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