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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지극히 사소하고 텅 빈 / 김근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4.08.16|조회수213 목록 댓글 0

 

 

 첫 순간이죠. 이름을 기억하나요, 그대? 아무도 얘기를 안 했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나는 나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내가 여름날 아침 나팔꽃처럼 시들 때 그대는 벼랑 끝에 걸린 아름다운, 더러운 노을이 되시겠다구요? 첫 순간이죠. 어쩌면 마지막인가요? 그대는 또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우리는 혁명을 기다리는 검은 그림자도 되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뻗어나가는 푸른 이파리는 더더욱 되지 못하고, 하늘과 땅 사이를 쏘다니지요. 단지, 고삐 풀린 천사처럼.

 

 기억하나요, 그대? 나라는 이름, 그대라는 이름, 이름이라느 이름, 혹은 잘못 붙인 무수한 명명들. 혹은 그 무수한 밤의 멍멍들.

 

 아무도 얘기를 안 했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사랑의 찬가>에서 변용.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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