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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알혼 섬에서 쓴 엽서 /박소원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4.09.15|조회수179 목록 댓글 1

 

 

[소통의 월요시편지_413호]

 

 

알혼 섬에서 쓴 엽서

 

박소원

 

 


잊겠다는 결심은 또 거짓 맹세가 되었다

 

시베리아 기차 좁은 통로에

슬그머니 꺼내놓고 온 이름에게

알흔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엽서를 쓴다

 

푸른색이 선명한 엽서의 뒷면에

가까운 곳이라고 쓰고

그 아래 아득한 곳이라고 쓴다

 

그러나 막상,할말이 뚝 끊겨서 오믈이라는 생선을 끼니마다 먹는 다고 쓰고

꽁치와 고등어의 중간種인 것 같다고 오믈이야기만 쓴다

 

엽서보다 내가 더 먼저 도착할 지 모른다고 쓴 후

나는 지금 로비에서 서성이다 수영장 의자에 앉아 있다고

별 의미없는 動線까지도 적는다

 

풀밭에 앉아

네잎크로버를 찾는 사람

푸른 호수로 내려가는 사람

전망대쪽으로 올라가는 사람

길의 방향은 각각 다르지만

영혼의 處所도 각각 다르지만

해가지지 않는 저녁

일행들은 약속처럼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입으로만 웃음을 보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보드카를 마신다고... 그리고

너무 먼 낯선 이 곳은

마치 동화의 나라와 같아서

기적을 다시 믿고 다시 꿈을 꿀 것 같다고도 쓴다

 

피로하여 하도 피로하여 자꾸 할말이 줄어들지만

그러나 이 아름다운 순간을 침묵할 수는 없어서 샛노란색 꽃을 꺾어

바이칼 호수 지도 사이에 넣고 다닌다고도 쓴다

 

아픈 손으로

쓰는 엽서는 통증 속에서도 章을 넘긴다

여행지에서 마다 습관처럼......

세상에 없는 너에게

나는 눈물없이도  내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네가 없는 나는 아무래도 사람도 귀신도 아닌

人間과 鬼神의 중간 種인 것만 같다고

마침표를 찍고도, 추신 한 줄 덧붙인다

 

 


*

가을입니다... 순례의 계절이지요... 정한 약속 없어도... 정한 사람 없어도... 홀로 빈 길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지요... 홀로 푸른 허공... 홀로 붉은 고갯길... 홀로 깊은 호수... 혼자 걷는 순례자의 깊은 그림자... 걷다가 홀로이 걷다가... 사람을 지우고 그림자를 지우고... 마침내 텅 빈 세상의 종점에 다다르면... "세상에 없는 너에게" 엽서 한 장 띄워보내고 싶은... 가을입니다.


바이칼 호수 너머 알혼 섬에 도착한 시인이 보내온 엽서를 띄우는 가을 아침입니다.


시를 읽다가 알혼 섬이 어쩌면 세상의 종점일 것 같은 것은 생각이 드는 것은 가을 탓이겠지요.


'가까운 곳이라 쓰고/ 그 아래 아득한 곳이라고 쓴다'는 문장이 '세상에 없는 너'라는 문장이 자꾸만 옛애인을 떠올리게 하는 건 순전히 가을 탓이겠지요.


'네가 없는 나는 아무래도 사람도 귀신도 아닌/ 人間과 鬼神의 중간 種인 것만 같다고/ 마침표를 찍고도, 추신 한 줄 덧붙인다'는 문장 앞에서 심장이 막힐 것만 같은 건 그래요 순전히 가을 탓이겠지요.


그래요... 당신이... 세상에 없는 당신들이... 무작정... 미치도록 그리운 가을입니다... 아닌가요?

 

 

2014. 9. 15.

 

강원도개발공사 대외협력팀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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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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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OOFE | 작성시간 14.09.20 신라의 혜초가 인도로 가서 주변국을 사년간 돌며 기록을 남긴 것이 왕오천축국전입니다.
    무엇을 썼을까요. 종이도 있었는지 모르겠고 있다해도 귀한 물건이니 글자수가 제한되어 있을테지요.
    엽서에 오믈 먹은 이야기처럼 초압축 단어만 남겼을 겁니다.
    행선지만 적어놓아도 추억속에는 다 담겨질 것입니다.
    이번 가을엔 각자 왕오천축국전 하나씩 만들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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