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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김경미]

작성자초록여신|작성시간14.09.23|조회수418 목록 댓글 4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김 경 미

 

 

 

 

 

 

 

낯선 읍내를 찾아간다 청춘이 시키는일이다

포플러나무가 떠밀고

시외버스가 부추기는 일이다

 

 

읍내 우체국 옆 철물점 싸리비와

고무호스를 사고 싶다

청춘의 그 방과 마당을 다시 청소하고 싶다

리어카 위 잔뜩 쌓인 붉은 생고기들

그 피가 옆집 화원의 장미꽃을 피운다고

청춘에 배웠던 관계들

언제나 들어오지 마시오 써 있던 풀밭들

늘 지나치던 보석상 주인은 두 다리가 없었다

머리 위 구름에서는 언제나 푸성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시계를 차도 시간이 가지 않던

시간이 오지 않던

하늘에 1년 내내 뜯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건

좌절과 실패라는 것도 청춘의 짓이었다

 

 

구름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고개가 부러졌던 스물셋

설욕도 못한 스물여섯 살의 9월

새벽 기차에서 내리면 늘 바닷속이었던

하루에 소매치기를 세 번도 당했던

일주일 전 함께 갔던 교외 찻집에 각각

새로운 연인과 동행했던 것도

어색하게 인사하거나 외면했던 것도 언제나

청춘이 시킨 짓이었다

 

서른 한살에도 서른여섯 살에도

계속 청춘이라고 청춘이 계속 시키며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다 청춘의 짓이다

어느덧 불 꺼진 낯선 읍내

밤의 양품점 앞에서

불 꺼진 진열장 속 어둠 속 마네킹을 구경하다가

검은 마네킹들에게 도리어 구경당하는 것도

낯선 읍내 심야 터미널 시외버스도

술 취해 옆 건물 계단에 앉아 우는 남학생도

떨어져 흔들리는 공중전화 수화기도

다 청춘이 불러낸 짓이다

 

 

그 수화기 떨어지며 내 청춘 끝났다 절규하던 목소리도

그 전화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것도

지금이라도 얼른 받아보라고

지금도 시키는 것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아직도 시킨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아직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청춘이

있다는 것도 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밤의 입국심사(문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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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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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우(時雨) | 작성시간 14.09.24 청춘이 시키는 짓을 훔쳐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 작성자금란초 | 작성시간 14.09.25 청춘이 시키는 일.. 뭘까요? 오랜만에 김경미 시를 만나니 반갑
  • 답댓글 작성자JOOFE | 작성시간 14.09.26 고무호스 사오라고 심부름 시키잖아요.^^*
  • 작성자오래된골목 | 작성시간 14.09.29 새 시집이 나왔군요. 반가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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