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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작성자JOOFE|작성시간14.11.02|조회수557 목록 댓글 0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었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 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 나는 태어날 때 어머니의 좁은 문을 거부했다.

그때부터 야인이 되길 각오했나보다.

거꾸로 들어선 나를 칼로 배 째고 끄집어냈단다.

지금도 나는 티셔츠를 입지 않는다.

좁은 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기 싫어서이다.

학교 다닐 때는 서클티와 과티를 입긴 했지만

그 후론 줄곧 단추를 많이 꿰는 옷을 입는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더니 나는 태어날 때 버르장머리가 평생을 간다.

출장갈 때 청바지를 가져가니 티셔츠도 하나 넣을까 했는데

찾아보니 티셔츠는 하나도 없다.

그느므 버르장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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