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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난한 애인 / 최분자

작성자김명서|작성시간16.03.10|조회수188 목록 댓글 0

가난한 애인


최문자



45년 전

애인은 가난했다

자꾸 손을 씻었다

잠깐, 잠깐만이라도

하면서 빨랫비누로 가난한 지문을 지웠다


애인은 혼자 쓰러지지 않았다

가난을 데리고

나를 데리고

하루 종일 통이 넓은 가난을 끌고 다녔다


보리빵 조각을 나눠 먹고

훌쭉한 뼈가 지리면

가난은 얼굴이 되었다


40년 훌쩍 지나

가난은 이제 지친 것 같다

죽어가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않았다


뼈를 뿌렸던 백령도로 가는 파도 위에

시집 한 권

말랑한 보리빵 세 개

겉봉도 쓰지 않고 던졌다


애인은 이제 손을 씻지 않는다

너무 많이 만져본 둥그런 빵조각도 놓친다

툭 툭 다 떨어뜨렸다


진눗깨비가 함부로 울려고 했다


안녕, 애인

아무 데나 뿌리 내리고 우거졌던

가난한 나의 빵조각들


쏴쏴, 바닷 속 시집 페이지가 넘어갔다



<열린시학> 봄호

한국의 대표시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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