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사랑

로드 Load / 박희수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16.03.10|조회수216 목록 댓글 1

 

 

내가 음악, 이라 말한다고 음악이 되지 않고

내가 새,라 말한다고 새가 날아오지는 않는다

말이란 묘한 것

새라 말함을 들으며 새를 생각함은 무엇이고

음악이란 말 속에 음악이 있다는 믿음은 무엇인가

새 훨훨 새 훨훨 새 훨훨은 나는가

음악 마단조 음악 포르테 음악 마단조 하면 들리는가

오르내리는 활

오르는가

내리는가

 

무희, 하면 웃는가

무희, 하면 꽃이 많은가

무희는 기능적인 존재 몸을 움직임이 핵심이다

몸, 하면 그대의 몸은 말랑말랑 풀어지는가

무희는 나팔 위의 꽃 물속에서 녹아내리는 국수 한파 속의 불꽃

무희의 발은 무엇을 지탱하고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희의 발이 떠오를 때

무희가 땅을 밀어내는가 땅이 무희를 밀어내는가

무희의 두 입술이 맞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둥근 모음의 울림을 전파시킨다

희,는 그다음에 온다

까무라치며 숨이 죽는 그 소리

 

단어와 단어 사이에 거울을 놓고

단어들이 서로를 가리키며 부단히 웃게 해주자

나 / 너

바람 /양말

겨울 / 해

두쌍의 단어들이 나란히 늘어설 때

같은 쪽의 단어들은 동의어라는 환상을 지니도록 생각하자

머리를 세탁물에 넣은 듯 축축해지며

나= 바람=겨울 양말= 너= 해

햇살이 빨랫줄에 걸린 양말을 뚫고 너의 얼굴에 닿을 때

입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을 미풍이라고 부르자

현실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며

너의 자세가 모든 걸 돌려놓기 위해서

혼자 있을 때

사물의 영상이 너에게 뛰어들게 하기 위하여

뛰어들어 너를 엉킨 국수처럼 만들 때

초점 없는 햇빛이 네 속에 육수처럼 스며들게 하기 위하여

 

나는 이름을 지녔다

나를 부른다고 거기 갈 순 없다

나의 이름을은 전화번호부에 오르고

심지어 내가 나를 이름으로 기억할 때도 있다

허나

이 순간은 낯설다

차가운 공기와 환한 빛이 뒤섞여

특이한 자세를 취하며 창문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것을 부를 말이 필요하다

말은 곧 사라진다

허나

말은 죽어도 가슴의 감각은 남고

맞게 발음한다면 굳어진 진흙을 깨뜨리는 부드러운 물줄기의 열쇠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                    *                    *

 

어둡고 뭉근한 맨드라미

운동장에서 자기 손을 씹어 먹는 소년

포탄을 파괴하는 까마귀

 

*                     *                        *

 

모두 돌아올 것이다

 

 

 

 

[물고기의 기적], 창비, 201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까삐딴 | 작성시간 16.03.11 로드가 느껴지는 시이네요 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