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꽃집에는 없는 것, 흙
정작 새집에는 없는 것, 하늘
정작 물고기 집에는 없는 것, 바다
우리집에 없는 것은 당신이 더 잘 알겠지?
쥐와 벼룩과 바퀴벌레를 힘껏 밀어내고
엎드려서 웅얼웅얼 글씨 읊조리고 있는 우리집
잡초와 빗줄기와 유령의 머리칼을 밀어내고
바람에 움찔움찔 계단을 터는 우리집
높은 집이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추락한 인부의 이빨이 들어 있네
먼 집이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담벼락에 붙은 늙은 엄마의 손바닥이 들어 있네
즐거운 집이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소름끼치도록 말말랑말랑해 두 주먹을 꽉 쥐지도 못하는
시시로 치미는 악령의 눈동자가 한 벌 들어 있네
하나님의 집에는 태어나라 죽어라 동사님들만 살고
우리집에는 나 나 나 나 인칭대명사들만 살고
자연의 집에는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형용사님들만 살고
검은 샘 깊은 집엔 누가 누가 사나
뱀처럼 땅속에서 깨어난 수맥이 살지
어느 날 장황한 소설이 지리멸렬하게 끝나듯
식구들 지상에서 모두 떠나고
꽃이 피고
나비 날고
저녁 가고
봄 오고
식사 같이 하실래요
영원히 죽지 않는 시계에 사는 망치가 시간 맞춰 때려주는 집
이생에 태어나 몇몇 집에 살다 가게 되는지 헤아리다가 잊어버렸네
이다음에 귀신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어느 집에 제일 자주 출몰하게 될까?
꿈 밖에서는 알아들었는데 꿈속에서는
정작 못 알아듣는 말, 우리집
모여 살 때는 알아들었는데 정작 정작에
나 죽은 다음에는 못 알아듣는 말, 우리집
다음 생에선 엄마아빠오빠동생 우리 우리 어떻게 알아볼까?
그러나 그러나 배 가라앉고
바닷속으로 잠겨가면서도 눈 감지 못하던 눈동자들!
집에 가고 싶어 ! 하던 눈동자들
[슬픔치약 거울크림], 문학과지성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