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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사과 [나희덕]

작성자JOOFE|작성시간18.06.18|조회수504 목록 댓글 0

야생사과 [나희덕]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


새가 쪼아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들이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물었을 뿐인데


                           - 야생사과, 창비, 2009






*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과를 받아먹었다.

시고 달고 쓰디쓴 사과를,

그들이 나에게 주고간 사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살게 하였다.

때로는 시어서, 때로는 씁쓰름해서 싫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단물이 입안 가득, 미소를 짓게할 때가 많았다.

관계속에서 주고받았던 많은 사과가 사랑이었음을

참 감사하게 생각하며 나 역시도 그들에게 사과를 건넸고

사랑을 주었다는 걸 알겠다.

나에게 풍경이 되어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그들의 풍경이 되어주었다는

이 인연이 수평선에서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것.

누군가 나와 얘기를 나누고 풍경이 서로 되어주고 수평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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