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다 사라지면 또 슬퍼진다 [허림]
나무가 되어야 했어 분명한 계절을 알아야 했어 꽃
을 보려거든 겨울을 견디는 법을 익혔어야 했어
한 생 후에 다시 생이 주어진다면 뿌리부터 땅속에
박는 도토리가 좋겠어 생명에 집착하는 나무일 때가
좋아 꼭 배워서 아는 건 아닐 거야 설령 배웠다면 무
엇이 되려고 바동거렸을 거야 꽃으로도 살려고 냄새
도 풍겼겠지
세상은 누구도 상수리나무꽃을 화병에 꽂지는 않아
꽃은 상상이 아니지 운다고 꽃이 피지는 않아 다음 생
을 사람이냐 나무냐 선택하라면 도토리나무로 살아
갔으면 좋겠어 다른 뜻은 없어
그냥
도토리나무로 살아보고 싶은 거야 그럴 때가 있
잖아
- 엄마냄새, 달아실, 2019
* 시사랑의 데네브들에게 오십문오십답을 묻는 중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 혹은 무슨 동물로 태어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대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와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답이 의외로 많았다.
나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답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나무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은 건 나무의 삶도 평탄치 않은 생이기 때문이다.
땅속의 흙들이 엄청난 저항을 하는데 뿌리를 내리는 고통은 엄청날 것이고
가지가 뻗을라치면 다른 나무들과 치열한 공간다툼이 있어야 하고
자연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으니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동거려야 하는 삶이 참 버거운 것이니
이 생을 다하고 슬픔이 사라질 때 다시 태어난다면 얼마나 또 슬퍼질까.
도토리나무로도 다시 태어나지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