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저 시집들을 다시 읽지 않을 것이다
집수리하던 사장은 다 갖다 버려라 했고
집사람도 빼곡한 시집들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손끝이 내 가슴 언저리 닿는 것 같아
당장 다 꺼내놓고 읽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식었지만 저들도 다 식었다
책장에 빽빽하게 꽃혀 있는 수백 권의 시집들
언젠가 내 손으로 꽁꽁 다 묶어서
일요일 밤 폐지 더미 옆에 갖다 놓을 것이다
이제 저들을 다 버려야 할 것 같다
저들도 알고 나도 너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저들을 떠날 수도 없고
저들을 차마 다 갖다 버릴 수도 없다
나는 결코 버리고 떠나기 위해 사는
수도자가 아니다
[면벽], 천년의시작,2019.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