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당신은 여전히
오늘의 눈송이가 불어오는 곳.
어떤 필자는 부지불식간 독자를 불러 세운다. 바닥없는, 젖은 손바닥을
목덜미에 놓는다.
책을 읽다가 한 페이지를 깊숙이 접게 되는 거기, 한 단락 문장이
검은 탕약처럼 엎질러져 있는 경우.
발 없이 방으로 들어서서 없는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고
혀 없이 혀를 감는, 환하게 불 켜진 심장으로 아득히
초원이 펼쳐지고, 흰 망초 무리가 들어서는
문장이 하는 이런 일들.
그날 밤, 책의 한 페이지를 깊게 접은 나는 책을 떠나 창가 쪽으로 갔다.
한 세기 전에 죽은 자가 한 말은 놀랍게도 어느 봄날, 당신이
고백의 휘발성에 대해 흘린 말과 일치하고 있었다.
죽은 필자의 영혼은 어떻게 시공을 되돌려 이곳, 익명의 독자에게 돌아와
밤의 밀서를 건넨단 말인가.
백 년과 백 년 사이, 별처럼 총총한 창문들.
그리운, 무수한 당신들이 창가에 있다.
수 세기 바깥 누군가가 한밤의 나를 따라한다. 읽던 책을 덮고
창유리에 이마를 댄다, 두 번, 마른기침을 하고 식탁으로 돌아와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 그의 등 뒤, 검은 유리창에
흰 눈송이의 소요가 떠오르다 가라앉는다.
마치 오늘 내가 배회하던 문장들의 혼령인 듯.
[사과 얼마예요],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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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JOOFE 작성시간 19.07.06 함박눈이 아니라 소낙비가 촤아아 오면 좋겟습니다.
우리나라만 더운게 아니고 전세계가 뜨거우니 점점 큰일입니다.리스본은 안녕할까요? -
답댓글 작성자길손 작성시간 19.07.07 잘 계시지요? 그래도 여기는 바람이 설렁설렁 다녀가는지 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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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JOOFE 작성시간 19.07.07 길손 그런가요.
이번주에 잘하면 광양을 지나갈지도 모르네요.
십수년전 받았던 명함을 잃어버린지라....
광양 바람 맞으러 지나가 보겠습니다.^^* -
작성자길손 작성시간 19.07.07 -책을 읽다가 한 페이지를 깊숙이 접게 되는 거기, 한 단락 문장이
검은 탕약처럼 엎질러져 있는 경우-
엎지러진 검은 탕약을 손가락에 묻혀 빨아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