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일기 2
오동지 섣달 오갈 데 없어 겨울 들판에 나선다. 친구 하
나 변변히 없는 외진 굴헝 속, 홀로 주막에 들러 쓴 소주
서너 잔 마시고 뺨 때리는 바람 맞으며 들길을 걷는다.
나무들 헐벗고 메마른 풀잎 날으는 텅 빈 들녘, 저만
큼 갈가마귀떼는 하늘을 선회하며 스산한 울음을 바람결
에 뿌리고 그 바람소리 귓전에서 웅웅 맴돌아 내 외로움
의 깊이를 더해주는 겨울 들에서, 가만히 입술 달싹거리
며 그 누구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의 이름을 토해보지만,
살면서도 살아가면서도 더는 내일이 없는 우리 이 땅에서
차라리 바람 되어 흐르고 싶은 한숨이 얼어붙어 재빛 하
늘 더욱 갈앉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 년을 앗기고 상처 입고도 이 겨울엔 노상 텅
빈 것으로 봄을 꿈꾸는 이들의 뜻으로, 이 엄동에도 여전
히 보리는 새파랗게 저 홀로 눈먼 세월을 매맞는 양하여
아직 나도 생목숨 청청히 들길을 걷는다.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거야],미디어 창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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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강 같은 세월 작성시간 20.01.04 아~, 눈물이 성글성글해지네요.
딱, 제가 저랬답니다.
방안에 온종일 앉아서 창밖이나 바라보다가
마당에 서성이다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얼른 해가 기울었으면 바랬지요.
참으로 기나긴 겨울입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분간도 못하게하는 지독한 고독이었고
이틀 건너 독작이었고
유일한 돌파구는 독서이었지요.지독한 편견이었지요.
지독한 독선이었지요.
내가 최고였지요.
불현듯이,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계절이었지요.
동네가 텅 비어지는 세월들 이었답니다.
그래도 이토록 표표히 살아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JOOFE 작성시간 20.01.04 고독, 독작, 독서, 독선...
독하게 견뎌낸 세월이었군요.
잘 견디셨네요. 박수쳐드리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