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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 김인자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20.04.13|조회수269 목록 댓글 1

소통의 월요시편지_704호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김인자

 

 

 



첫 결혼기념일이 이혼기념일이 된 후배의 변은
걷잡을 수 없는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란다
40년을 한 남자와 살고 있는 나도
실은 한 남자와 사는 게 아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호시탐탐 친구의 애인을 넘보고
선후배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웃사내에게 침을 삼켰다
단언하지만 이런 외식이 없었다면
나야말로 일찍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결혼제도란,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진 공소시효가 불분명한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불법 사기극, 나는 달콤한 미끼에 걸려든 망둥어, 위장취업자, 아니 불법체류자, 결혼이라는 기업에 청춘의 이력서를 쓰고 정규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상근봉사자, 가문의 대소사엔 대를 이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식에겐 만료가 없는 무보수 근로자,



이런 근로조건에서 이 정도 바람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후배일 터,
나는 삼류영화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고
후배는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다




―『당신이라는 갸륵』(리토피아, 2020)




 

 

*

횡계의 바람, 티벳의 바람, 세렝게티의 바람, 히말라야와 알프스의 바람, 고비와 사하라의 바람, 지금도 어느 바람 길을 걷고 있을 것만 같은, 김인자 시인의 신작 시집 『당신의 갸륵』에서 한 편 띄웁니다.

 

올해로 결혼 57주년 된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사셨는지 아시는지요?

어쩌다 다투기라도 하면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애비야" 성을 내다가도

어쩌다 입원이라도 하면 "날 두고 가버리면 어떡하냐 애비야" 눈물을 찍고

"아직도 그리 좋아요?" 물어보면 "어데, 택도 읍다" 하면서

그렇게 속마음 감춘 채 반백년 사셨더랬지요

턱도 없는 반백년을 하루처럼 함께 사셨지요.

 

지금 이 시를 읽는 당신은 결혼 몇년 차인가요?

 

연애는 사랑의 현상이지만 결혼은 약속이지요. 사랑의 현상은 길어야 3년이니 그 다음엔 서로 약속을 지키며 사는 거겠지요.

아플 때가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죽는 날까지 서로를 존경하고 믿으며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지요.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뜻대로 되던가요. 백년해로, 지척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백년을 함께 걷는 일은 그래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지요.

 

그 약속 지키기 어렵거든 이렇게 해보라며

김인자 시인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과서를 버리고 삼류소설을 읽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숨통 트이면 40년 50년 마침내 백년해로도 거뜬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 톤으로)

교과서를 따른 결과 1년 만에 이혼한 후배와

삼류소설이라는 처방전을 따르며 40년을 함께 살고 있는 시인

두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일까요?

당신이라면 어느 삶을 선택할까요?

우문(愚問)을 던진 것이니, 모쪼록 현답(賢答)을 들려주시기를....

 

아직 투표 안 하셨다면 15일 꼭 투표하시고요!!^^

 

 


2020. 4. 13.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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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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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래투 | 작성시간 20.04.13 결혼 기념일이 이혼 기념일이 아닌 것만으로도 나름 성공 했다고.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안 해도 후회
    이혼은 후회속에서 나온 것이니 또 후회.

    그럼에도 25년 살다보니
    불쌍히 여겨지고,측은하고
    그래요.
    쉬는 날이라 좋아라하는 김치 볶음밥
    준비하러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강건하셔요.
    다래투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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