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희망에 대해 써보고
함께 읽어봅시다
침묵
빈 종이에 채워지는
글자들
희망은
아주 컸다
금세 사라졌다 뾰족했다
무채색이고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절절 끓는 물이었다 굴절되는 빛을 닮았다 끔찍
했다
아주 단 무엇이었다
함께모인 사람들과
다 같이 낭독하고 다 같이 들었다
희망은 참 심심한 것이다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다
낭독이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서려 할 때
대체 희망은 어디 있는 거지? 물음이 들려올 때
옆에 앉은 사람이 작게 말했다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있다고
가장 마지막은 어디일까 알 수 없어서
돌아가려던 사람들의 뒤통수가 무거워졌다
희망은 세탁기 안에 있다
나는 혼잣말을 하고
그때 우린 훼손이란 단어를 자주 썼는데
자신이 경험한 훼손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남을 훼손시킨 이야긴 하지 않았다
이제 가방을 챙기세요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남아 있던 한 사람이 낭독을 시작했다
덜 닫힌 문이 조용히 닫혔다
희망은 모서리가 깨진 서랍장을
이사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끌고 가는 것
먹고 입고 사는 것
마지막을 만들면서 가는 것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담지 않는다
[힌트 없음], 현대문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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