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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이름 없음 / 강혜빈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0.05.20|조회수240 목록 댓글 0


나는 이제,

이곳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차가 멈추고 파란불이 켜지는

나만 모르는 세상에서

시시한 고독을 연기하는


와르르 흰빛을 뒤집어쓰면

잘못 떨어진 천사처럼

픽 쓰러지기도 하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 빛을 만지는 것 같아"


혼자 온 사람은 팔짱을 끼고

둘이 온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마른 손을 더듬으며

본다, 보고 있는 것 같아


뒤집어진 무지개가 잠깐 피어오를 때


우리는 빛으 기울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거나

곧 죽을 것처럼 껴안거나

어쩔 수 없이 기절하고,

벽에 대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 눈에만 보이는 그림자들은

그림자를 벗고, 또 벗어서

첩첩 쌓인 허물을 밟으며

문과 문 사이를 건너가는 것이다


오지 않은 사람은 아직 오지 않고


너는 이제,

그곳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침대의 반쪽을 잃어버린

너만 아는 세상에서

밤의 뒤척임을 기다리는


하나, 둘 박수 칠 때 사라지자

긴 편지 대신 귓속말로

말린 꽃보다 시드는 입술로

으깨지는 밥알처럼 무해하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주전자에 든 물을 흘리며 걷자

울면서 뒷발을 무는 개처럼

불 켜진 계단을 향해

자꾸자꾸 내려가자


더 낮은 곳, 더 더 낮은 곳

닫힌 문, 또 닫힌 문

더 높은 곳, 더 더 높은 곳

열린 문, 내내 열린 문


환호 소리. 먼지 소리.


남겨진 발들은 서성이고 있다

들어오는 문이, 나가는 문이 될 때까지


누구세요,

그런 대사는 없었지만



[밤의 팔레트], 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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