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랗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어젯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그 집의 주인 여자는 측백나무처럼 일없이 늙어가던 사내 등에
패물이며 논마지기며 울긋불긋한 딸의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짊어 보냈다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우툴두툴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랜덤하우스, 2007
* 능소화의 꽃말은 여성, 명예이다.
이 꽃은 질 때에도 꼿꼿이 눈 시퍼렇게 뜨고 제 모습 그대로 떨어진다.
명예를 지키는 여성 같다.
아주 옛날 구중궁궐의 한 궁녀인 소화가 우연히 임금의 눈에 들어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
다른 여자들의 시기로 인해 다시는 임금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죽어서 담장에서나마 임금을 바라보는 꽃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여성들이여, 명예를 지키라. 능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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