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놀이 [김선우]
배롱나무 아래 나무 벤치
내 발 소리 들었는지
딱정벌레 한 마리 죽은 척한다
나도 가만 죽은 척한다 바람 한소끔 지나가자
딱정벌레가 살살 더듬이를 움직인다
눈꺼풀에 덮인 허물을 떼어내듯 어설픈 움직임
어라, 얘 좀 봐. 잠깐 죽은 척했던 게 분명한데
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딱정벌레 앞에서
죽은 척했던 나는 어떡한담?
햇빛이 부서지며 그림자가 일렁인다
아이참, 체면 구기는 일이긴 하지만
나도 새로 태어나는 척한다
햇빛 처음 본 아기처럼 초승달 눈을 만들어 하늘을 본다
바람 한소끔 물 한 종지 햇빛 한 바구니 흙 한 줌 고요 한 서랍.....
아, 문득 누가 날 치고 간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실은 내가 죽은 척하게 되는 거란 걸!
나의 부음 후 얼마 지나 새로 돋는 올리브 잎새라든지
나팔꽃 오이 넝쿨 물새 알 산새 알 같은 게 껍질을 깰 때
내 옆에 있던 기척들이 소곤댈 거라는 걸
어라, 얘, 새로 태어나는 척하는 것 좀 봐!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
* 육십사세까지는 중년으로 보니까 아직 나는 몇년 남은 셈이다.
우얬든 노년에 가깝기는 해서 어릴 때를 생각해보니
오십만 먹어도 노인처럼 보였던 것 같다.
육,칠십년대만 해도 중년이면
치아가 대체로 성치 않은 편이라 더 일찍 노화가 되었던 것 같다.
암튼 지금은 육십사세 너머가 그옛날 오십처럼 보인다.
봄날이라서 그럴까 요즈음 체력은 저질이 되어 쉽게 지치는 편이다.
근육도 조금씩 사라지고 밤에는 정신없이 자게 된다.
방전된 체력을 충전하려는 몸의 반응 같기도 하다.
그래도 늘 아침이면 새로 태어나는 척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밤에는 죽은 척!
낮에는 새로 태어난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