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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가 내린다 / 함민복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1.05.29|조회수270 목록 댓글 0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서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생활인데

비가 와 더 선명해진 원고지 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를 질문의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우울씨의 일일],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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