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수제비 뾰얀 국물이 빗소리로 들끓는
다 선반에는 먼 나라의 접시와 촛대가 있고 비는 중얼
중얼 흘러내린다 수제비를 먹다가 창밖을 보다가 시무
룩한 평화가 찾아든다
쏟아진 김칫물이 식탁의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멈춘
다 붉은 줄의 난간에 서서 우리는 표지판 하나씩 들고
서로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비가 내리고 오로지
그는 창밖에 서 있고 나는 너무 식탁에 오래 앉아 있다
먹다 만 수제비가 있고 깍두기가 있고 목이 긴 꽃병
의 절벽 속으로 빗소리가 걸어 들어간다 빗방울이 허
공을 바늘 찢는다 우리는 어쩌다 빗방울 속에다 집을
지었나
누가 밤의 긴 머릿결을 저리 오래 빗질하고 있나 비
는 그치지 않고 나는 식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그는
늘 창가의 사람, 그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빗방울을 두
드린다 밤새도록
똑똑, 저 비의 밀을, 나는, 어찌할,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 걷는사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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