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사랑

반성 / 김상미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2.12.14|조회수545 목록 댓글 0

 

깊이깊이 후회해

너를 사랑했던 것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너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사주었던 것

네 품에서 알몸이 되었던 것

아무렇게나 던져진 텅 빈 우주에 너를 초대했던 것

너와 함께 비엔나의 숲속에서 치즈버거를 먹었던 것

너에게 가장 친한 내 친구를 소개했던 것

너 때문에 비 내리는 센강에서 울었던 것

너 때문에 불같이 타오르는 꽃잎 하나가 내게로 떨어졌던 것

너의 모든 말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환하게 웃었던 것

네가 한 모든 약속을 모래로 가득 채워 흘러버렸던 것

너를 떠나보내기 위해 나보코프를 읽으며 모나코 나비를 찾아 헤맸던 것

그러고도 네 꿈을 자주 꾸었던 것

그러고도 너와 함께 잘 먹던 꼬투리 완두콩을 아직도 좋아하는 것

그러고도 이런 시를 쓰고 있는 나

그 모든 것을 후회해

깊이깊이 후회해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문학동네, 202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