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70호
별어곡역
전윤호
지금 여기서 나와 헤어진다
싸락눈 내리는 적당한
이별의 온도
울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그저 가슴께 높이까지만 손을 들어
잘 가라 다시 오지 마라
어디 먼 데 가
따숩게 살거라
추위에 지친 널 보내고
빙판길로 이어진 새로운 겨울 속으로
아주 들어간다
- 『천사들의 나라』(파란, 2016)
***
밤사이 또 눈이 내렸습니다. 몇 번의 눈이 더 내리면 봄이 올까요.
오늘은 동가식서가숙하며 풍찬노숙의 길 위에서 시를 쓰는 전윤호 시인의 시집에서 한 편 띄웁니다.
전국을 떠돌던 전윤호 시인이 이제는 고향 정선과 고향 같은 춘천을 오가며 삽니다.
정선 남면에 가면 '별어곡(別於谷)'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의 이름이 별어곡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이별하는 골짜기"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무인역(無人驛)인 '별어곡역'이 있지요.
시 쓰고 소설 쓰는 강기희 형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별암(鼈巖), "자라바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을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鼈巖"이라는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별어곡(別於谷)으로 고쳐 쓴 것이라는데요...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을 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별암보다는 별어곡이 훨씬 애잔한 곡절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이별하는 골짜기와 이별하는 골짜기에 세워진 기차역이랍니다.
그러니 시인은 이리 노래할 수밖에요.
"잘 가라 다시 오지 마라 / 어디 먼 데 가 / 따숩게 살거라"
생각하면 세상의 어떤 역도 다 별어곡역이고 별어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생각하면 우리의 한생이 별어곡을 살다 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내 옆의 당신을 좀 더 따숩게 대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올해는 당신과 둘이 정선의 별어곡역을 다녀와야겠다 그리 생각해보는
영하의 겨울 아침입니다.
2023. 1. 30.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