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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나비를 보는 마음 [김승희]

작성자joofe|작성시간26.06.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흰나비를 보는 마음 [김승희]

 

 

 

 

봄에는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스웨터의 뜨개실이 배꼽에서부터 고요히 풀리고 있다

몽롱한 아스피린 하얀 분말 같은 대기

노인들이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은 중력이 약해서 

나비처럼 가벼운 것 같다

 

봄에는 새 옷을 사려고 했는데

봉은사역 3번 출구 앞 옷가게가 폐업하고 있다

순댓국 식당 옆 '자매패션'

일꾼들이 옷상자를 들고 나가고

쇼윈도 앞에 마네킹이 몇개 서 있다

마네킹의 옷을 벗기고 여자를 분해하려고 한다

 

노란색 가발 빨간색 가발 흑색 가발

검은 눈 갈색 눈 파란 눈

모가지 팔다리 가슴 배 허벅지 손가락 발가락 뚝뚝 꺾고

몸을 정리해서 야단법석을 한다

입관을 한다

어제

골목길을 지나갈 때 살아있는 여자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봄에는 중력이 약해서 삶과 죽음이 뒤죽박죽한다

스웨터의 뜨개실이 배꼽에서부터 입까지 조용히 풀려 나가는데

현실과 초현실과 비현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봄에는 내가 나를 다 내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 빵점 같은 힘찬 자유, 창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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