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은 고양이 같다고나 할까요. 나다운 건 무언가. 흔
자서는 알 수 없고 거리에선 고장이 납니다만. 어차피 벗어
날 수 없는 희비극 속에서
사람도 많았고 음식도 많았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말했어요. 난 비건이야. 비구니야? 하마터면 그럴 뻔했어요.
그녀가 웃는 게 좋으니까요. 딱히 고기를 먹고 싶었던 건 아
닙니다만. 신경이 쓰일까봐 선수 친 건데요. 그런 게 배려는
아닐 텐데요. 사실 난 서른 전에는 풀만 먹던 사람인데요. 입
과 마음이 한 몸이라 굶기도 잘하는데요. 싫은 건 끼니도 기
도도 키스도 입에 대지도 않는데도요.
카멜레온의 보호색은 자체 변색이 아니다. 환경에 따라
우리의 눈을 속이는 거다. 홍색소포라는 피부 반사판을 통
해 특정한 색만 반사시켜 보여주는 것. 생존과 의사소통을
위하여! 360도로 눈알을 굴리면서
명절날엔 담배를 참아요. 오빠들은 담배를 끊었대요.
위하여! 서른살에 시작했던 건 육식이 아니라 회식이었습
니다만.
맞자요. A형입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인프제고요. 게다가
시를 씁니다. 부끄럼이 많아요. 혀도 길어요. 혀 밑에 숨어
요. 막말을 하고 나면 땅을 쳐요.
물 흐르듯이 쓴다는 건 무언가. 기승전결, 자연스럽게 꾸
미려고 자꾸 손을 대요.
그날은 반가운 친구도 만났는데요. 20세기에 등단한 시인
말이죠. 20세기 20세기 그러길래 나는 21세기 시인이라고
선을 그었어요. 6개월만 반올림하면 맞거든? 하마터면 그
럴 뻔했어요. 웃기지도 않을 텐데요. 딱하지도 않을 텐데요.
20세기에 죽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데도요.
사마귀가 사마귀 등에 올라탄다. 사마귀는 살고 싶지만
하고 싶다. 주저하는 수컷의 머리를 지켜보던 암컷이 먹어
치운다. 머리가 사라진 사마귀는 몸만 남아 더 열심히 한다.
더 많은 탄생이 있을 것이다
머리를 떼어놓고
혼자서 핥는 뒤통수처럼
나는 21세기에 살아남아서 고기도 먹고 거짓말도 해요.
디저트로 20세기도 씹어요. 이십세기는 일본산 배의 품종
이름. 엷은 초록색이며 9월 중순에 익는다.
지구의 밤도 익어가고
멀리서 반짝이는 화성도 익어가고
호모사피엔스의 고독도 무르익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다.
회색 피부의 로봇들이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귓속말을
한다. 없애버릴까?
무표정한 아메카의 농담을 엿들으며
나는 늙은 나무처럼 누워
팔다리에 붙어 있는 고양이들을 나뭇잎처럼 어루만집니다.
물 흐르듯이 산다는 건 무언가. 생로병사. 자연스럽게 사
라지려고 아침엔 요가를 해요.
고양이들을 먼저 보내려고 죽음을 미룹니다. 내 품에서
죽어라. 내가 낳았다는 듯이. 끈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나의
멸종을 지켜봅니다. 참으로 깁니다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
될 정도입니다.
꿈을 깨듯
알을 깨듯
사람의 껍데기를 터널처럼 통과하면 자연으로 돌아갈까
요. 자연은 갖지 못한 내딸의 이름. 언젠가 태어난다면 자연
이라 부르고 싶었어요. 그날의 미래는 영원히 미래일까. 오
늘은 자연을 낙태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자연이 그리운 밤
이에요.
눈꺼풀을 이불처럼 덮으면
내 앞에서 문장이 사라집니다. 문장에서 내가 사라지는
걸까요.
인생에서도 내가 사라지고 나면
몰입했던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배우처럼
현장을 떠도는 귀신이 될가요. 그러다 현장범처럼 덜미를 잡히고
유품정리사가 말합니다. 좋은 데 가서 편히 쉬시기를 바
랍니다. 오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릴게요. (일제히 묵념.)
[우울과 경청],창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