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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매달린 창문 바깥으로 이따금 비가 흘러내렸고 [권현형]

작성자joofe|작성시간26.06.20|조회수51 목록 댓글 0

높이 매달린 창문 바깥으로 이따금 비가 흘러내렸고 [권현형]

 

 

 

창가에 오래 서서 기름기라고는 없는 비를 구경했다

왜 그 순간 괴테가 생각났을까

자전거 안장 모양의 높이를 가진 의자 위에서

밤낮으로 글을 썼다는

밤낮으로 달렸다는

오래전의 고행을 빈집 화초들이 따라 하고 있었다

내가 무릎을 웅크리고 있는 동안 선인장은

행여 있을 물길을 찾아 헤매느라

 

제 잎사귀의 물기까지 털어먹었는지

잎사귀 표면이 쪼그라져

고뇌의 늙은 주름으로 뒤덮인 채

 

가망 없는 지하세계에서 탈출했다

잎사귀로 높이 뿌리를 옮긴 다음

허공에 남아 있을지 모를 물기를 더듬고 있었다

온몸이 뿌리가 된 선인장은 밤낮을 걸어 나를 찾아왔다

 

믿을 수 없는 결핍으로 자신의 생을 채찍질하는

선인장을 눈앞에 두고 책에서 읽은 “슬픈 천국”이 떠올랐다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지나치게 솔직한 어느

성직자의 말처럼 천국에 슬픔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따금 비가 흘러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가시 선인장은 죽음이 아닌 천국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창밖의 빗물에 혀를 대지 못하는 선인장이나

초원을 달리지 못하고 안장 위에서

평생 문장을 채찍질한 괴테나 끝내 갈망한 것은

 

어쩌자고 한 방울의 물

한 방울의 도취

 

 

​              - 계간 『시와경계』 2024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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