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첫 장을 걷어내니,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천 장에 한 장만이 당신을 살립니다.
손이 떨려서 다음 장을 걷어내지 못하고 몇 년이 흘렀다
빠르게 늙고 있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두 장, 세 장, 일곱 장,
열한 장, 스무 장......
나의 손은 다급했고
얇게 겹쳐진 평면들은 구겨지고 찢겨 날아간다
도대체 나를 살릴 한 장은 어디에......
밥을 챙겨 먹고 개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개는 코로 곳곳의 풀잎을 다 들추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장에서, 아, 아니
어느곳에서 오래 머물며 냄새를 맡는다
집에 돌아와 개의 발을 씻기고 헝겊으로 꾹꾹 눌러 말려
주었다
개는 집 한켠에 수북이 쌓인 수백 장의 무던덤에 가
킁킁거린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개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몇 장 남지 않은 무덤을 걷어낸다 천천히
그러다 방금 걷어낸 한 장을 다시 덮어보니
나를 비추는 평면이다
[11시 14분],난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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