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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밀푀유 / 박세미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6.06.21|조회수39 목록 댓글 0

 부드러운 첫 장을 걷어내니,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천 장에 한 장만이 당신을 살립니다.

 

 손이 떨려서 다음 장을 걷어내지 못하고 몇 년이 흘렀다

 빠르게 늙고 있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두 장, 세 장, 일곱 장,

 열한 장, 스무 장......

 나의 손은 다급했고

 얇게 겹쳐진 평면들은 구겨지고 찢겨 날아간다

 

 도대체 나를 살릴 한 장은 어디에......

 밥을 챙겨 먹고 개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개는 코로 곳곳의 풀잎을 다 들추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장에서,  아, 아니

 어느곳에서 오래 머물며 냄새를 맡는다

 

 집에 돌아와 개의 발을 씻기고 헝겊으로 꾹꾹 눌러 말려

주었다

 개는 집 한켠에 수북이 쌓인 수백 장의 무던덤에 가

킁킁거린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개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몇 장 남지 않은 무덤을 걷어낸다 천천히

  그러다 방금 걷어낸 한 장을 다시 덮어보니

  나를 비추는 평면이다

 

 

[11시 14분],난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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