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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싱싱한 단어는 / 마종기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6.06.21|조회수42 목록 댓글 0

 1

 

 

젊고 싱싱한 단어는 젊은이들이 가져가고

노회한 단어는 머리 굴리며 냄새만 피우고

누추하게 나이 든 단어만 나른한 소리 연발하며

눈이 어두워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네.

어디서 파릇한 단어를 찾아 노추를 숨길까.

 

젊은 단어들은 매일 새벽 부터 일어나

이슬을 차면서 힘차게 일터로 떠나고

늦저녁에야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펄펄 살아 날뛰는 시들을 한 묶음 안고

아끼는 사람들을 힘차게 포옹한다.

내가 비집고 들어설 곳은 없어 보인다.

 

 이제 나는 한밤에 달이나 열심히 바라보다 달이 하는

말이나 받아 적고 아니면 호박꽃이 피면서 하는 말, 하다

못해 배추밭에서 몸을 흔들며 웃어대는 배추의 웃음이

라도 몰래 받아보아야겠다. 그것도 잘 안 되면 한여름 과

수원의 사과가 시끄럽게 떠드는 말들, 그 말들을 다 걷어

한동안 곱게 응달에 말리면 될까. 그 말에서 나오는 열기

나 습도를 식히고 말리면 가을 햇살에 잘 말린 고추처럼

빛나고 매운 단어를 만질 수 있을까. 냉장고의 야채나 과

일은 언 지 오래되어 말리면 부스러질 터이고, 머리를 굴

려 만든 단어들은 시작부터 눈치나 볼 터이니 안 되겠지.

나이 들어 살아 있는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

한 일이다.

 

 2

 

 그리운 곳은 사실 다 변해버렸다.

 몸 안에 소중하게 지니고 있던

 젊은 날의 밝고 힘찬 기운도 떠나고

 유유자적하던 내 혼까지 침침하게 흐리다.

 그늘에 가렸나, 당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웃이 외면하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다.

 낚싯바늘같이 거북하게 목에 걸리는

 아픔같은 단어, 아쉬움 같은 단어,

 밤이 되어도 산천은 더 맑게 깨어 있다.

 아니면 내가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

 당당하던 등이 굽어지고 밤이 길어진다.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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