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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고래 / 정일근

작성자플로우|작성시간26.06.23|조회수23 목록 댓글 0

바다에서 연민을 가지지 마라

불법 포경업자에 쫓겨 도망가는 고래가 나이고

그 고래 잡자고 달려가는 자 또한 나이다

그 사이 연민에 빠진 시인 또한 나이다

바다는 인생, 그 인생 바다에

너와 나의 구분은 필요 없는 법

우린 화엄의 바다에 피고 지는 한 뿌리 가진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다

나에게 작살을 겨누던 사람이 나이고

옆구리에 작살 맞고 피 흘리는 고래 또한 나이다

나에게 손가락질하던 이 나이고

손가락질 받던 이 역시 나이다

역지사지의 바다에서 고래는 용서와 하해의 부처

왼뺨을 치면 오른뺨 내미는 자비의 부처이니

결국 바다에서 학살은 내가 나를 죽이는 일이니

내 뺨 내가 치고 내 옆구리에 내가 작살 쑤셔 넣는 일이니

무슨 연민이 필요하겠는가

왜 눈물을 흘리겠는가

우리는 역지사지의 바다에서 같이 죽어가는 고래일 뿐이니

용서든 연민이든 다 버리고 돌아가

해원解寃 하자.

 

 

[꽃 지는 바다, 꽃 피는 고래],산지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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