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시사랑

회색거리 [박지혜]

작성자joofe|작성시간26.06.23|조회수19 목록 댓글 0

회색거리 [박지혜]

 

 

 

 

  회색 길을 걸어 세상의 끝을 향해 햇빛을 자르고

바람을 자르며 하얀 옷을 입고 검은 눈을 가리고 얼

어가는 심장에 종이꽃을 꽂고 종이꽃의 적정 온도는

낮아 사람이 만지면 서서히 타들어가는데 회색 길을

걸어 이상한 모자가 나를 쫓아오고 이상한 모자와

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것은 모든 상징을 싫

어하고 세상의 끝은 상징이 아니라고 하고 무기력한

빛이 쏟아지는 회색 길을 걸어 건널목을 건너 담쟁

이 담을 돌아 세상의 끝을 향해 걸음이 빨라지고 심

장이 빨라지고 끝과 공원을 쓰기로 했던 우리의 시

절은 아름다웠나 영원한 언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회색 길을 걸어 햇빛을 자르고 바람을 자르며 이상

한 모자와 나의 거리만큼 그리움이 생기고 알 수 없

는 그리움이 생기고 그리운 그림자 그림자에 그림자

를 더하고 계단도 없고 언덕도 없고 회랑도 없는 회

색 길을 펼치며 얇은 공기 얼어가는 심장에 칼을 꽂

아 종이꽃의 온도를 올리고 불붙는 종이꽃의 온도를

올리고

 

 

            - 햇빛, 문학과지성사, 2014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