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나는 피부과 문을 민다.
예순을 넘기고 시작한 일이다. 처음 다닐 때만 해도 대기실은 온통 여자들뿐이었다. 간혹 남자가 보이면 아내를 따라온 보호자이거나, 여드름이 심한 십대 청소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곳이 어느새 7대 3으로 남자들이 채워졌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다. 대부분은 제모 때문에 온 젊은이들이겠지만, 나처럼 피부 관리를 받으러 오는 청년들도 눈에 띈다. 그 청년들 눈에 내가 좀 별나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남자가 혼자 앉아 관리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남의 시선보다 내 만족을 먼저 챙기는 법을 배웠다.
내가 관리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남 앞에 나서는 일을 하고, 상대가 주로 젊은이들이다 보니, 그저 조금 더 깨끗해 보이고 싶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들 앞에 섰을 때 풍기는 인상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내용이 충실해도, 첫인상이 낡고 지쳐 보이면 절반은 이미 손해다. 비싼 화장품에 돈을 쏟는 것보다 피부 자체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명품 크림 하나 값으로 한 달을 관리받을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나쁜 장사가 아니다.
처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피부과 문을 열고 들어서던 첫날, 접수대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뒤를 돌아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몸을 관리하는 데 나이가 어디 있고 성별이 어디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지금은 원무과 직원들과도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내 발은 악성건조다. 한여름에 등산화를 신고 몇 시간을 산에 다녀와도 땀 한 방울이 나지 않는다. 남들은 부럽다 하지만, 겨울이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발뒤꿈치가 갈라지고 각질이 일고, 심하면 피까지 본다. 갈라진 틈새가 깊어지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끔따끔 쑤셔온다. 여름에도 슬리퍼 한 번 편히 신지 못하고 매일 공을 들여야 하는 발이다. 처음에는 발뒤꿈치 전용 크림이며 각질 제거제며 이것저것 사다 발라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네일샵이다. 처음엔 여성들만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에 망설였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나 같은 중년 남성 손님도 적지 않았다. 40분 관리를 받고 나면 아기 발이 따로 없다. 관리사가 묵은 각질을 말끔히 정리해주고 나서 바라보는 내 발은 낯설 만큼 보드랍다. 지불하는 돈보다 만족감이 몇 배는 크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오히려 왜 진작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돈의 가치는 금액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다주는 만족에 있다는 것을 발 관리를 받으며 새삼 깨달았다.
키가 작아서 커지는 약이 있다면 한번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다. 키에 관한 한 평생 작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얼굴만큼은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쌍꺼풀 수술을 권유받은 적도 있고, 보톡스를 맞으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잘 버티고 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도 안다. 부모님이 주신 자연산으로 사는 것이 맞다 싶어서 지금껏 고집을 지켜왔다.
지난달에는 그 고집이 잠깐 흔들렸다. 오래 망설이다 하안검 수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눈 아래 처진 살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 꽤 되었는데, 주변에서 권하기에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싶었다. 접수를 하고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어간 상담실이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대부분 예순, 일흔 대 어르신들이었고, 부부가 함께 오거나 딸과 동행한 분들이 많았다. 보호자 하나 없이 혼자 앉아 있자니 등이 근질거렸다.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수술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상안검과 하안검을 동시에 받으셨다는 그분이 하안검은 엄청 아프다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손을 내저으시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로 마음이 접혔다. 모처럼 하기 힘든 경험을 하고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아프다는데 굳이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면이 중요하냐, 외면이 중요하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내면이 먼저 익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반반한 얼굴도 속이 비어 있으면 금방 들통이 나고, 아무리 주름진 얼굴도 눈빛이 살아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가꾸는 일과 외면을 다듬는 일이 서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아끼고 가꾸는 태도가 내면의 자존감과 닿아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관리를 받으러 가고, 매일 선크림을 바르고 립밤을 챙긴다. 아직 늙지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로. 소소하지만 꽤 진지한 나만의 루틴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노화의 주범은 결국 스트레스다. 잘 먹고 좋은 것을 발라도 마음이 늘 긴장 상태에 있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얼굴이 굳고, 눈빛이 탁해지고, 주름이 깊어진다.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옛 어르신들 말씀이 역시 맞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건강하다. 단순하지만 이 셋을 동시에 충족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잠드는 일에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셋 다 그런대로 해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내가 속으로 외우는 주문이 두 가지 있다.
"그래, 너 잘났다."
"아, 네. 죄송합니다."
좀 그렇긴 하다.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굴욕이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마디면 웬만한 상황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맞서서 얻을 것이 없는 싸움에서는 힘을 빼는 것이 지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져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이, 사실은 내 평정심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다. 한번쯤 써보시길 권한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젊게도 살고 싶다. 나이를 먹는 일은 어쩔 수 없어도, 늙어 보이는 것만큼은 조금 더 버텨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일주일에 한 번 피부과 문을 밀고 들어서는 그 작은 고집이, 나에게는 아직 살아있다는 작은 선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