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인 제주에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것은 새삼 어린 아이조차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자들의 눈물어린 한限의 서린 장소이기도하다. 365일동안 하루도 쉴새없이 여성들의 드나들던 곳이다. 70-80년만 해도 제주에서는 대학나무인 밀감나무를 심기 전에는 모든 들판이 돌담을 경계로 삶의 터전인 셈이다. 돌과 바람의 섬 제주에서 밭담은 대지가 숨을 쉬는 유일한 통로다. 척박한 화산재 토양을 일구며 평생 흙 속에 박힌 돌을 골라내어 쌓아 올린 현무암의 연속은 제주의 거친 땅이 토해낸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무늬다. 이 거뭇거뭇한 돌담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대지 위를 꿈틀거리는 장관을 두고 사람들은 ‘흑룡만리’라 부른다. 제주의 2만 2,000km 밭담은 거친 대자연과 싸우며 자식들의 생명을 지려 낫과 골갱이로 온전히 맨손으로 일궈낸 위대한 삶의 성벽이랄까?
이 거칠고 단단한 이력서의 중심에는 바다의 영웅이기 전에 땅 위의 농부였던 ‘생계형(Livelihood)’를 책임져야 할 어머니의 혼魂의 담겨있기 때문이다. 흔히 해녀를 바다의 지배자로만 기억하지만, 제주의 거친 바다가 인간에게 물질을 허락하는 시간은 1년에 고작 60일에서 70일 남짓이다. 바다가 닫히는 나머지 3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해녀들은 테왁을 내려놓고 호미를 쥔 채 필연적으로 밭담 안으로 걸어 들어가 검질을 매고, 농작물에 북을 주고 보리타작의 끝나면 고구마와 조, 메밀을 심고 가꾸어야 한다. 하루도 쉴틈의 나지 않는 세월이다.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숨비소리를 뱉어내던 해녀들에게 밭담은 마르지 않는 또 다른 바다였고, 그 위대한 어머니들의 숨결과 고단한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함께 나이를 먹어왔다.
거칠어진 손, 이 밭담 안에서 흙을 만지고 돌을 고르며 단단해져 있었다. 밭담은 해녀들이 거친 바다에서 돌아와 밭가에 앉아 흘리던 땀방울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배고픔에 젖을 먹이던 장소도 이곳밭담의 가장자리이다. 한마디 원망의 소리도 없이 그저 하늘에 뜬 뙤약볕 아래 패랭이 눌러쓰고 자기만의 독백으로 오늘도 살아간다.
밭담의 위대함은 역설적이게도 그 거친 틈새와 비워둠의 미학에 있다. 현무암을 성글게 맞물려 쌓은 밭담은 틈새가 숭숭 뚫려 있어 언뜻 보기엔 허술해 보이지만, 쉴새없이 몰아치는 제주의 태풍도 견뎌낼만큼 견고하다. 높낮이도 제주의 바람에 맞게 삲여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뭍의 돌담처럼 촘촘하게 쌓여있지 않은데도 무너지지 않는다. 설문대 할망이 지켜주어서 그렇겠지 내 혼자 자문해본다.
밭담 사이로 통과한 바람은 속도를 줄여 밭담 안의 귀한 흙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고, 연약한 농작물의 뿌리가 뽑히지 않도록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 안는다.. 돌 틈으로 바람이 비껴가듯 삶의 과도한 욕심을 조금 걷어내야만 비로소 대지가 작물을 키워낸다는 무언의 훈수가 이 거친 돌 틈 사이에 스며있다.
또 밭담 안에는 조상의 묘들의 안장되어 있다. 왜 하필이면 들판으로 가지 않고 이 밭담으로 끌어들인 것인가? 죽은 자들은 말의 없지만 그들의 손을 빌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은 농부는 결코 땅을 떠나지 않고 자기가 평생 일구던 밭담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밭담은 농사가 잘될 때나 안될 때나, 볕이 내리쬐는 날이나 비바람이 치고 눈이 내리는 날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밭의 주인과 그 가족들 곁을 지켰다.
시어머니 잔소리에 밭모퉁이 돌멩이를 걷어차며 속을 달래던 며느리의 서러운 한숨을 받아내 준 것도 모두 밭담이다. 제주의 온갖 집안 사정과 삶의 비밀을 가장 많이 공유해 온 가장 정겨운 동반자이자, 침묵의 목격자가 바로 이 밭담이다.
이젠 이런 밭담과 산담은 보기조차 어렵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 아쉬움, 지금의 AI시대에 괜한 소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