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쉘터, 그곳은 모두의 공간이다
오늘 버스를 기다리다 불쾌한 일을 겪었다. 한 아주머니가 반려견을 이동 캐리어에 넣지도, 안지도 않은 채 버스 정류장 쉘터 안으로 들어왔다. 개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정중하게 요청했다. 캐리어에 넣거나 안고 계시거나, 어렵다면 바깥에 계셔 달라고. 돌아온 건 짜증과 언성이었다. 그리고 항의의 표시였는지, 아주머니는 개를 사람이 앉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거기에서 개가 오줌을 쌌다. 물티슈로 닦기는 했지만, 그 의자에는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이 앉아야 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쉘터 안에는 데리고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그러자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작은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공공 에티켓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공공장소에서의 배려는 별개의 문제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라고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비반려인 혹은 알레르기나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의 불편은 점점 더 쉽게 묵살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 '털 별로 안 빠져요'라는 말은 반려인의 주관일 뿐, 타인의 신체 반응을 보장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 쉘터는 특정 집단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비를 피하고, 더위를 잠시 식히고,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누구나 머무는 공용 공간이다. 그 안에서 반려동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이 유발된다면, 그 사람은 쉘터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그것이 공평한가?
에티켓은 규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을 대중교통 이용 시 이동장치에 넣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공장소에서의 목줄 착용도 의무다. 법적 기준을 차치하더라도, 밀폐된 공용 공간에서 낯선 이의 동물을 예고 없이 마주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는 감각, 그 최소한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것을 요청했을 때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은, 나의 공간 사용권이 당신의 불편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사람이 앉는 의자 위에 동물을 올려두는 행위, 거기에서 배설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아무리 닦아낸다 해도 그 이후에 앉을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는 것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혐오하지 않는다. 다만 공공장소를 함께 쓰는 방식을 묻고 싶다.
반려동물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어떻게 데리고 나오느냐, 타인과 어떻게 공간을 나누느냐의 문제다. 배려는 내가 불편하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요구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치게 민감한 요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