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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도, 침묵을 품다

작성자김희남|작성시간26.06.20|조회수23 목록 댓글 1

송이도, 침묵을 품다/김희남

 

섬에 가 닿으려면 발길보다 먼저 마음이 한참을 걸어야 했다. 일상의 소음이 지독하게 귓가를 파고들던 날 나는 이름조차 낯선 영광의 포구를 찾아 길을 떠났다. 멀리 칠산바다 위에 말갛게 떠 있는 섬! 송이도(松耳島)가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 귀를 닮았다는 그 아담한 섬은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고요한 안식처처럼 보였으나 배를 타고 다가설수록 바다는 만만치 않은 기세로 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마치 네 안의 소란을 다 내려놓지 못한 채 감히 이 고독의 땅을 밟으려 하느냐고 꾸짖는 듯했다.

하지만 밀려날수록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마음으로만 그리던 섬이 아니라 소금기에 찌들고 거친 생을 품고 있는 실체의 섬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향화도 선착장을 떠난 배가 마침내 송이도항에 닻을 내렸을 때 섬은 거창한 환대 대신 깊은 침묵으로 나를 맞이했다. 내가 육지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억울하고 답답했던 사람의 말들은 섬의 거대한 적막 앞에서 갈 길을 잃고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선착장을 벗어나 섬의 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초록빛이 우거진 왕소사나무 군락지였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마치 내 지친 어깨를 토닥이는 위로처럼 들렸다. 숲을 지나 작은 해변으로 향하는 길 위에는 오롯이 자연의 언어만이 선명하게 차 올랐다.

송이도 최고의 비경이라는 큰내끼 해식동굴 앞에 섰을 때 나는 압도적인 대자연의 가르침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만 년 동안 거센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기면서도 육중한 몸을 누인 채 바다를 받아내고 있는 기암절벽과 동굴! 세상의 어떤 풍파도 결국은 저렇게 덤덤하게 받아낼 수 있다는 무언의 계시 같았다. 동굴 안에서 거꾸로 바라보는 푸른 바다는 마치 액자에 담긴 한 폭의 명화 같았고 바위 틈새마다 박힌 소금 결정들이 햇살에 반짝일 때 나의 내면도 저렇게 단단하게 굳어 빛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았다.

 

​섬의 백미는 단연 마을 앞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몽돌해변이었다. 모난 모서리 하나 없이 둥글둥글하게 깎인 하얀 돌들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서글서글'하며 몽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온 해안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바다가 섬에게 건네는 은밀한 고백이자 오랜 그리움의 전언이었다. 팽나무 군락지의 커다란 그늘 아래 앉아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가슴 속 엉켜있던 감정의 실타래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듯 했다.

 

​섬을 떠나기 위해 다시 포구로 향하는 길, 나무 사이로 비칠거리는 포구의 전경이 보였다. 큰 손을 벌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던 햇살은 떠나는 자의 뒷모습을 축복하는 듯했고 올 때는 밀쳐내기만 하던 바람이 이제는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주었다. 그것은 매정하게 쫓아내는 바람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으로 돌아가 네 몫의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훈풍이었다. ​배를 타고 멀어지며 뒤돌아보니 송이도는 마치 대처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으로 칠산바다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가서 잘 살아라! 힘들면 언제든 이 침묵의 품으로 돌아오너라" 하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섬의 실루엣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섬은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이제 그 섬은 내 가슴 속에 들어와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섬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 어떤 거센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몽돌과 해식동굴을 하나 갖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세상의 소란에 마음이 다시 어지러울 때면 나는 내 가슴 한복판에 앉아 있는 하얀 몽돌 소리를 꺼내어 들을 것이다. 송이도라는 커다란 섬 하나가 내 안에 들어와 앉아 나를 대신해 파도를 맞고 나를 대신해 바람을 견뎌줄 것이기에...,(2026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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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雲岩/韓秉珍 | 작성시간 26.06.20 김희남 시인님 6월 셋째주 토요일 점심시간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오후시간도 더위에 건강유의 하시고 빗길 조심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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